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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기 전 즐기는 데이트, Philbrook Museum of Art재미나게 살아보기 2021. 1. 2. 07:31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하나가 더해지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는 더 이상 둘 뿐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들떠있기만 했지, 둘이서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기도 하다. 아마 셋이 된 후에는 셋이 아닌, 새로운 하나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과 신경이 집중되겠지.
아이를 기르고, 돈벌이에 신경쓰고, 그렇게 나이를 먹다보면 먼훗날 돌이켜 봤을 때 둘이서 함께 했던 연애, 신혼생활은 많이 희미해질지도 모르겠다. 희미해질지라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소중할 둘이서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 먼 시간의 일은 아니지만 서로 친하지도 않던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함께 여행 그룹이 되어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잠도 잊은해 카톡에 정신이 팔려보기도 하고, 괜히 말이라도 걸어보려는 이유로 듣지도 않던 노래들도 찾아 들어서 추천도 해보고, 괜히 미술관에 갔던 이야기 (램브란트, 모네, 마네, 고흐 아는척 엄청 했음)도 해보고, 처음으로 둘이 밥을 먹던 날에는 (데이트라기 보다는 첫 탐색전) 지금의 아내가 내 차 트렁크에 두고 간 노트북 덕분에 자연스레 다음 만남이 이어지기도 했다
머지 않은 기억들이라 지금도 모두 생생하지만, 이런 기억들이 우리를 여기까지 잘 이끌어 온 것을 보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하루가 없다
그리고 12월 23일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날. 미리 집에 와계시던 장인장모님 찬스로 강아지도 맡기고, 둘의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아마 아기를 맡기고, 외출을 하는 느낌이 이런걸까)
아무튼 한창 카톡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갈 때 나는 뉴욕에 놀러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미술관 얘기도 했던 조금은 안어울리던 대화들이 기억났다
그래도 서로 미술에 대해 관심있는 척을 했으니 그래도 적어도 한 번은 미술관 데이트를 (양심상)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던터. 다행히 우리가 살고 있는 털사에도 Philbrook Museum of Art라는 미술관이 있어 서로의 예술적 감각을 다시 되새겨 보고자 (그 당시 대화 이후로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그리고 마음 편히 둘이서 따듯하게 데이트하기엔 제격인 미술관을 찾아갔다
그림은 이 정도로 되었다. 천천히 다 둘러보면서 우리 둘의 대화는
"와 이 그림 진짜 같다"
"와 여기 진짜 예쁘따"
"비켜봐 여기 사진 남겨야해"
그리고
"밖에 정원이 예쁘다던데 나가보자 얼른 미술관 문 닫기 전에"
로 종결되었다 (물론 미술관에는 컬렉션도 꽤나 많고, '좋아보이는' 작품들도 많았다)
그리고 임산부가 걸을 수 있는 걸음으로 가장 빨리 걸어나가본 정원
마침 평일이고, 덕분에 사람이 없어 큰 정원을 걸을 때면 바쁜 세상 속 가장 조용하고, 평온한 곳에 와있는 기분을 주었고, 우리 둘이 맘 편히 하는 데이트라는 컨셉에는 제격이었다. 그닥 크게 바쁘고 힘든 삶도 아니었으나 언제나 이런 평화는 환영이다
"이런 집 정도면 은행 대출 1000년 정도 갚아나가면 되지 않을까"하는 되도 않는 재미없는 농담도 허락될 정도로 기분을 업시켜주던 정원
정원을 걷다보면 작은 나무집을 만난다. 그냥 쉬는 곳이겠거니 하고 가던 길을 가려던 때, 아내는 들어가보자고 한다
아내의 말은 잘 들어야 한다는데, 이 때는 참 듣길 잘한 것 같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셀로판지인지, 아님 교회,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인지. 무튼 다행히 적당한 각도의 햇빛이 만든이가 의도한 바를 100프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있는 작은 나무집에 들어온 갖가지 색깔을 만나자니 많이 오바해서 동화 속 어떤 외딴 집에 들어와있는 느낌
작은 나무집을 지나 걷다가 본 아이들이 모래 장난할 수 있는 곳과 갖가지 모래 장난용 고급 장비들
그렇게 정원을 즐기고, 다시 돌아온 미술관 실내
관람객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곧 태어날 아기의 태명인 애플을 그린 아내.
어떤 것이 당신에게 독립을 상징하나요? 라는 물음에 떡하니 걸어두고 온 사과 그림 한 점
둘에서 셋이 되는 것이 어찌 독립이 될 수 있을까. 사실 그 때는 큰 생각없이 그냥 재미로 남긴 그림
하지만 지금 5초 만에 든 생각으로 억지로 껴맞추어 보자면 앞으로 태어날 (사실은 글을 쓰는 이 시점 태어나있는) 아기가 우리 가족을 모든 걱정, 고민, 어려움으로 독립시켜주지 않을까? 역시 5초만에 든 생각은 부족하다
아무튼 출산 전 단 둘이 하는 데이트는 성공적
아기가 무럭무럭 자랐을 먼훗날,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에 지쳐 이 날의 기억이 희미해지겠지만, 가끔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 시간으로 오래오래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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