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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퇴근하기 전 30분
여느 때와 같이 울리는 아내로부터 온 카톡. "저녁 뭐먹지?"
요즘 원래 일터였던 아틀란타를 떠나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 아내는 저녁 먹을 시간 즈음에 돌아오는 나를 위해 저녁까지 준비해준다. 가정주부가 적성에 맞는다고 농담반 진담반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즐겁게 이것저것 요리에 도전해주어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지난 번 다녀온 달라스에서 미리 사온 김밥 재료로 첫 김밥에 도전해보겠다고 던진 야심찬 카톡 한마디
"오늘은 첫 김밥 도전해본다"
조지아에 살 때는 한인마트만 가면 널려있어서 쳐다도 보지 않던 김밥이 여기서는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오랜만에 먹을 김밥 생각에 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열심히 굽고, 지지고, 볶은 김밥 재료들. 김밥이 꽤나 정성이 들어간 음식임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다
물론 나는 늦게 도착한 탓에 수저를 놓는 일 빼고는 도울 수 있는 일이 크게 없었다
하지만 설거지는 당연 내 몫. 양심은 있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항상 요리하는 주변을 맴도는 두부
가끔 강아지는 짠 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헤친다면서 건강식만 챙겨주고, 열심히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는 우리들.
'인생 뭐있나 맛있는거 먹고 사는거지'하는 마음에 나에겐 관대하지만 두부에겐 그러지 못해 가끔은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두부에게 미안한 마음은 고새 잊고, 열심히 김밥에 반짝반짝 참기름도 살짝 입혀주고, 귀한 음식 답게 큰 접시에 세팅까지 완료.
미국산 다진 쇠고기가 들어간, 밥의 양은 줄이고, 각종 재료로 가득 채운 김밥.
아내의 매우 아주 성공적이었던 첫 김밥.
요리한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법은 맛있게 먹는 것이다. 순식간에 김밥 다섯줄을 끝낸 우리. 남은 깁밥은 나의 몫.
그리고 또 콩고물이라도 없나 맴돌던 두부가 얻어먹은 것은 주황색 당근. 방금 말했던 미안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미국 작은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정말 먹고 싶어서 직접 해먹는 음식'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중이다
어설프게 만들었지만 꽤나 맛있었던 탕수육, 치즈돈가스, 김밥. 평소엔 귀찮아 사먹기만 했던 음식들.
스킬이 하나씩 늘어가는걸 보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음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이상 우리 가족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첫 김밥에 대한 짧은 글. 다음엔 어떤 메뉴를 골라볼까
(참고로 이 글을 쓰기 전 제목에 "잘 말아줘 잘 눌러줘~"로 시작할 뻔 했는데 정말 이제 아재가 맞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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