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9. 11:58에 작성했던 글)
어느덧 서른 두 살이 되었고, 눈 떠보니 결혼한 유부남이다 (그런데 아직 학생)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시골에 갇혀 수능 공부를 하며, "아 나는 대학가면 무조건 여자친구 사귈거야, 금방 사귀겠지" 객기 어린 근자감으로 밝은 미래를 다짐하던 그 모습도 이젠 벌써 손가락 열 개로도 다 세어 볼 수 없는 십여년이 흘렀고,
대학 시절, 동아리 면접(들)에서 생각지 못한 큰 쓴 맛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봉사 동아리에 들어가 신나게 술을 마시고, 나름 봉사를 한지도 벌써 8년이 넘어간다 그래서? 인생을 뒤돌아 보려다가 갑자기 쓰고 싶어진 동아리 면접기를 작성해본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동아리였는데, 이 때도 나의 객기는 다시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용기를 발휘하고 말았다
동아리 선배1 "컴퓨터 어떤거 할 줄 아세요?"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할 자리 배치임을 눈치채고 얼른 용기 있게 대답했다
나 "아 저는 워드 자격증도 있구요, 윈도우 잘 다루고, 피피티도 잘 만들고, 컴퓨터 몇 번 고쳐봤습니다"
멋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대답을 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나 다음 사람 "아 저는 씨뿔뿔 하구요, 자바 (아프리카 어딘가 모르는 나라인 줄 알았다)도 다뤄봤구요"
나 다음 다음 사람 "네 저는 해킹팀에 속해서 해킹 대회에 나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해킹도 대회가 있구나, 나쁜놈들)
결과는 안 말해도 좋을듯,
다음은 기타 동아리였다
본인은 고등학생 시절 원치 않게 기타 감수성을 강요당했고, 시골 학교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 바 있기에 자신있었다
동아리 선배2 "우리는 여름 방학 때 학교에 남아서 같이 연습하고, 공연 준비도 하는데 여름 방학 때 남으실 의향이 있어요?"
나 "아니요 여름 방학에는 저는 여행도 가고, 집에도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 순진했던 녀석.
다음은 학교 홍보 동아리였다
이 쯤 되면 나는 하나의 큰 관심사가 없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다시 느껴진다 물론 축구를 너무 좋아했지만 근 이십년간 극복할 수 없었던 신체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축구 동아리는 근처도 안가봤다
무튼, 학교 홍보 동아리, 무언가 멋있었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고, 나도 거기에 들어가면 뭔가 핵인싸(그 때는 없었던 말인데 뭐라고 표현했었는지 기억이 안난다)가 될 것 같은 기분에 면접을 봤다
어린 객기로 뚫은 양 쪽 귀에 검은색 콩자반처럼 큰 귀걸이를 끼고, 갓 매직한 찰랑이는 머리에 (지난 세월 엄마가 수 없이 해 준 잘생겼다는 말에) 자신감을 갖고 면접을 봤다
동아리 선배3 "우리 동아리는 일이 많아요. 가끔은 바빠서 수업이나 과제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동아리 홍보일이 있는데, 갑자기 내일까지 교수님이 과제를 해오라고 시킨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 "네 저는 원래 노력형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동아리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너무 자신있고, 멋있게 대답한 내 모습이 듬직하여 바로 엄마에게 "나 학교 홍보 동아리 될 것 같아"라고 자랑했고, 그 길을 마지막으로 학교 홍보 동아리방 근처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교수님들은 갑자기 내일까지 숙제를 해오라고 시키지 않는다는걸.
자 이제 남은 선택권이 없었다
어딜 가야 하지, 아 맞다 나 대학가서 여자친구도 사귀고 재밌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다른 동아리들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봉사 동아리였다
지금도 인성/성향 (취향이라고 썼다가 뭔가 이상하여 급하게 바꿨다) 검사를 하면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 사회봉사 관련 항목. 이런 내가 봉사 동아리 모집날에 참석했다. 동아리방은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하 나는 여기도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동아리방을 가득 채운 그 모든 사람들을 다 받아준 덕에 나도 동아리가 생겼다
아 역시 봉사동아리가 최고야, 나도 내가 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다시 돌려주고 얼마나 뿌듯할까 생각하며 지난 나의 창피한 동아리 면접 역사를 다 잊었고, 매주 열심히 술을 마시러 다녔다 (물론 봉사를 하긴 했다 자주)
우연한? 기회에 들어간 봉사 동아리에서 지금까지 함께 잘 지내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었고, 처음으로 봉사도 해봤고, 오바이트도 많이 해봤다
앞서 말한 나의 객기 어린 근자감은 역시나 근자감이 맞았고, 여자들이 많기로 소문난 그 동아리에서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커플들이 되어 갈 때 나는 그 대부분에서 제외된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고, 그 우정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잘 한 선택일까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내 선택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다시금 느껴본다. 그리고 츄리닝을 입고 그 위에는 남방을 걸치고 다니던 나를 본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가끔 이렇게 생각해보면 무섭게도 구체적으로 그 순간들이 기억난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 충격과 창피함이었으면 동아리 면접 때 그 일들이 다 기억이 날까. 불쌍하다 나의 어린 동아리 탐방기.
지금은 다 커 면접 때는 질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든 공식이 머리에 저장되어 있을 정도로 머리가 약아졌고,
실제로 그런 방법들로 꽤 많은 면접에서 성공해왔다.
이제는 왜 그 때 처럼 솔직해지지 못할까 하는 생각, 그 때처럼 너무 순수했다면 아니 너무 솔직했다면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지 하는 안도감이 서로 교차한다
지난 기억들을 조금은 왜곡하여 생각나는대로 적느라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했던 그래서 안타까웠던 그 때로 한 번은 돌아가보고 싶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홍보 동아리에 합격한 것 같다고 문자로 엄마에게 자랑하던 나의 핸드폰을 당장 끄고 싶고,
나의 줄가라 남방 아래 츄리닝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선택할 겨를도 없이 "대부분"에서 제외되어 "우정"만을 쌓아온 친구들에게 치킨과 맥주를 사주고 싶다
괜시리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나의 동아리 면접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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