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와 생각

외할머니

by 미국 사는 한국 공대생 2020. 9. 21.

2020. 5. 25. 11:08에 작성했던 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요즘은 비싼 아파트 렌트비를 피하려 처가댁에서 지내고 있다

아파트 렌트비를 피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몸도 사실 편하다 (일을 별로 안시키신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예정해두었던 한국에서의 계획, 유럽 여행 등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만,

이런 저런 생각도 조용히 할 수 있고, 지난 30년 간 미뤄두었던 독서도 할 수 있어 나름 알찬 시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늘 문득 와이프와 장모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 보고 있자하니

외할머니가 문득 머릿 속에 떠올랐다

나는 굉장히 어렸을 적 출장이 잦은 아빠 덕분에? 때문에 엄마와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외할머니 집에서는 팬티 바람으로 다닐 수 있었고,

반면에 친할머니 집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친할머니도 무척 좋았다 물론

우리 집에서 15분을 걸어나와 근처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고 성북역(방금 알았다 성북역은 광운대역으로 바뀌었다 아 세월...)에 내려 마을 버스를 타고 건영 백화점 앞에 내려 10분을 더 걸어들어가면 있는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집

어린 시절 엄마 등에 업혀, 엄마 손을 잡고, 엄마를 이끌고 외할머니집이 있는 성북역에 가는 지하철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이 걸려 도착한 외할머니집에는 항상 부드러운 소갈비찜이 정사각형 진한 갈색 상 위에 있었고,

그 갈비찜 소스에 밥을 비벼 먹으면 참으로 맛있었다

결혼을 하기 전 같이 살던 외삼촌은 언젠가 결혼을 했고, 그 15층 아파트에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두 분이 살고 계셨다

외할아버지도 나에게 무척 잘 해주셨지만 (항상 나무피리를 만들어 주셨다) 오늘은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보자

외할머니는 항상 까부는 나를, 엄마에게 장난을 잘 치는 나를 예뻐해주셨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의 좋은 친구이자, 좋은 엄마였다

항상 먼길을 지하철을 타고 우리집에 오고 가시며 김치를 만들어 주시던 우리 외할머니는 어느덧 더 나이를 드셨고,

나이든 외할머니는 추운 겨울 경로당을 가는 길에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육체적 건강 마저 갑자기 빼앗겨 어지러움을 자주 느끼셨고, 우리가 직접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어 나도 돈을 벌게 되었고, 나름 효도를 하겠다고 작은 TV를 선물했고,

더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의 건강은 더 안좋아지셨지만 우리 엄마와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효도는 작은 것들은 선물하고,

명절 때 마다 방문하고, 전화를 드리는 것 뿐 이었다

문득 문득 내 머릿 속에 굉장히 자주 떠오르는 모습은

세탁기를 선물하는 우리 가족의 손을 잡고 느린 걸음으로 세탁기를 고르러 갔던 그 때 그 시간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나이를 먼저 드시고, 먼저 돌아가신 터라 외할머니는 더욱 외로웠고, 더 빨리 늙어가셨던 것 같다

내 머릿 속 항상 건강하고, 재밌었던 우리 외할머니는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에 어느덧 진짜 노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를 본 것은 카카오톡 비디오톡이었는데, 날 보면 항상 장난을 치고, 내 농담도 잘 받아주던 외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말씀도 잘 안하시고, 웃음도 보이지 않으셨다 아마 안좋아진 건강에 많은걸 내려놓으셨던걸까..

그 후로 외할머니는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미국에 있는 나에게는 나에겐 친구같았던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단짝 첫째 딸이자 하나 밖에 없는 딸 우리 엄마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엄마와 외할머니도 한 때는 젊어 나의 와이프와 장모님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겠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 탓에 외할머니에게 많이 기댔겠지

외할머니도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딸 우리 엄마를 시집보내고는 이런저런 걱정이 있으셨겠지

김치담그는 법부터, 아기 키우는 법까지 하나하나 외할머니에게 배웠을 우리 엄마.

그리고 장모님께 이것저것 배워나가는 나의 와이프.

당연한 그리고 매우 일상적인 모습에서 엄마와 외할머니가 보냈을 그 시간, 그 공간이 떠올랐다

이제는 일산 어느 동네에 있는 절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외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

항상 의지하던 부모님이 모두 없어진 우리 엄마. 더욱 더 그 때 엄마의 울음 섞인 마지막 인사가 마음 속 깊이 박히는 날이다

외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 그 곳에서 평안하게 잘 쉬고 계세요.

엄마는 저랑 우리 가족이 모두 잘 지킬게요.

언젠든 꿈에 나타나 저와 우리 가족들 만나러 오세요. 저 결혼했어요!!

보고 싶은 외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