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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회사 다니기

미국 정유 회사 취업기 (1)첫만남

by 미국 사는 한국 공대생 2020. 9. 21.

2020. 5. 29. 1:46 글

 

아무것도 아닌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덮고,

그리고 자신만만하던 미국은 결국 최악의 피해국이 되었다 (오늘 기준 1750000명 확진자)

실업자 수는 40.8 밀리언을 넘었다는 뉴스를 방금 확인했다

몇 주 전 기름값이 마이너스로 떨어져 이제는 기름을 가져가면 돈도 덤으로 준다는 뉴스가 돌았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사상 최고 주가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2019년 11월 미국의 꽤 큰 정유 회사에서 리서치 엔지니어로 합격 연락을 받았고,

2020년 8월 입사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부문에서 어찌나 위기가 많은지

회사에서는 "너의 job은 안전하다. 건강 잘 챙겨라. 곧 보자" 라는 친절한 이메일을 예비 직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누구나 살면서 내 나이 때는 (운이 좋으면) 한 번에서 혹은 수 십번에 이르기 까지 경험하는 회사 면접

나는 지난 2012년 석사 학위를 마치고, 한국의 대기업 두 군데에서 면접을 보고 합격하여 1년 6개월의 짧은 회사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박사 유학 공부를 시작하고, 부족한 언어 능력 탓에 막연히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미국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연구직인 덕에 여느 인사 부서, 경영 부서에서 요구하는 굉장히 수려한 언어 능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도전이었기에, 기억하고 싶기에

그리고 내가 경험한 한국 대기업 면접과 미국 대기업 면접은 굉장히 달랐기에 취업 도전 시작부터 천천히 남겨 본다

-첫만남-

마치 소개팅에 자리에서 지인의 소개로 어색하게 첫만남을 시작하듯

나는 우리 학과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여러 회사들과 첫만남을 시작했다.

우리 과에서는 매년 심포지엄이라 하여 여러 회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채용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19년 봄, 나는 솔직히 참여하고 싶었던 욕구보다는 의무감에 참여했고,

지난 유학 생활동안 극복하지 못한 영어 울렁증 그리고 긴장감에 하루 전날부터 조금은 상기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내가 지난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첫 소개팅 하루 전 부터 긴장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키워드를 짜고 준비했던 것처럼

하루 전부터 레쥬메를 다시 확인하고, 회사 사람들과는 무슨 얘기를 하고, 뭘 물어봐야 할지, 어떻게 긴장안한척을 해야할지

등등 갖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다음날 이벤트를 준비했다

연구 프레젠테이션은 다행히 무사히 끝내고, 나에게는 메인 이벤트였던 채용 상담 시간.

주식 시장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 보던 미국 대기업들에서 나온 사원들(대부분 우리 학교 출신으로 배정하는 듯 하다)이 회사마다 지정된 자리에 서서 학생들의 레쥬메를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10개도 넘는 참여 회사 목록에서 내가 관심있는 회사 5군데 정도를 정했고, 당당한 척, 긴장하지 않은 척 하며 첫만남을 시작했다

첫번째 도전. 회사A.

너무 들떠있는 회사 사람의 모습에 나도 마치 항상 행복하고,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마냥 악수를 했고,

준비했던 멘트를 날리고, 준비했던 질문을 날리고, 준비했던 소재가 생각보다 빨리 떨어진 탓에 첫만남도 그렇게 일찍 끝났다

마치 소개팅 분위기는 너무나 좋았는데 돌이켜보면 헤어질 때 서로 미련도 없었던 것 처럼.

두번째 도전. 회사B.

아 이런 상태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좀 더 연습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딱히 관심에 두지 않았던 회사와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물론 좋은 회사였지만 역시나 연구 주제도 회사와 크게 맞지 않았고, 관심이 없으면 티가 바로 나는 탓에 두번째 만남도 그리 길지 않게 끝났다

효율성이 중요한 공돌이에게는 서로 관심이 없다면 크게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법.

세번째 도전. 회사C.

여자분인데, 명함을 보니 직급도 높고, 뭔가 나를 딱히 맘에 들어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앞에 나랑 동기인 중국인 친구가 굉장히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다 아 저런 적극성이 왜 나에겐 부족한 것인가

이 회사는 저 친구가 선점했구나...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살짝 주눅들어 있었고,

그게 티가 났는지 짧은 대화 후에 job description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종이 한 장을 주며 여기 확인해보라고 한다 아직은 내가 하는 연구 분야에서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며.

그리고 n번째. 회사D. (마지막 차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바로 내가 곧 다니게 될 회사다. 그 때는 몰랐지만.

인상 좋은 직원과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이런 연구 저런 연구를 했다 나는 사람이 좋아서 콜라보레이션도 굉장히 잘한다고 하며 자화자찬을 했다

맞장구를 너무 잘 쳐주는 그 분 덕에 준비했던 멘트도 다 잘 날리고, 질문도 많이 하고, 다른 회사들에 비해 꽤나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회사에서도 관심있는 분야인지,

어떤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지.

회사가 위치한 도시의 생활은 어떤지.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장점은 무엇인지. 등등 나름 굉장히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고,

다음에 취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꼭 다시 보자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아 이 회사랑은 나랑 케미가 좋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사람은 적절한 시간에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나 스스로를 다그치며, 뒷사람에게 다음 인터뷰를 양보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과거일을 돌이켜 보자니 내가 입사한 회사와의 첫만남은 좋기만 했던 것 같지만,

그 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족해보이고, 떨어진 자신감에 이불을 몇 번 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인연과의 기억은 더 아름다워진다고 성시경이 노래했던가.

한없이 부족해보이고, 약해보였던 그 날 나에 대한 기억은 나도 모르게 조금은 왜곡되고, 점점 더 아름다워져 이렇게 여유롭게 글까지 남기고 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없었으면 했던) 학과에서 마련한 식사 시간에 의무감으로 또 참여했고,

원형 테이블 위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영어를 캐치하느라 그리고 캐치한 영어에 빠르게 대답하려고 머리를 굴리느라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나와 나의 첫 미국 직장과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