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우리집 화장실에 필요한 물건을 사던 날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몇일전 문득 떠올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
바닥에 난 구멍으로 물이 잘 빠지는 플라스틱 가방에 양옆으로 촥하고 펼쳐지는 손잡이 그 안에 키가 높지 않은 샴푸통, 비누, 떼수건, 등등 각종 샤워용품을 들고 목욕탕을 가곤 하던 엄마의 모습. 혹은 아줌마들의 모습.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 후 목욕탕에서 돌아온 엄마의 누가봐도 오랜 시간 씻고 돌아온 불그스름하게 뽀얘진 얼굴, 그리고 아직 채마르지 못한 물기를 달고 돌아온 목욕바구니.
나도 모르게 나이를 먹는 사이에 너무나 당연하고, 별거 아니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문득 떠오를 때면 잽싸게 아내도 공감하고,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지 묻곤 한다
다행히 88년생인 아내와 89년생인 나의 기억은 부산, 부천의 먼 지역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일치하여 문득 떠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꽤나 재미있다
이것말고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자주 보였던 공중전화박스. 그 시절에는 어떻게 그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침으로 남았을 수화기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했었는지. 코로나로 가뜩이나 공중청결에 예민해진 요즘, 공중전화기 옆에 두껍게 달려있던 전화번호부에 친구집 번호가 없나 찾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더러우니까 그 수화기 그만 만지라고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1541 우물 정자를 누르고 동전 하나 없을 때 별거 아니었을 일에 다급하게 집에 전화를 걸던 모습이 또 그려졌다. 그리고 수신자부담전화는 가족말고는 함부로 받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까지도.
아무튼 이렇게 가끔 생각나는 것들이 재미있어지는, 이야기거리가 되는 아저씨가 되었나보다
이제는 아저씨지만 어린 시절의 문득 떠오르는 따듯한 기억이 많아 행복하고, 목욕탕 생각하니 바나나 우유가 먹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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