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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살아보기

미국 생활_셀프헤어컷에 대한 단상

by 미국 사는 한국 공대생 2020. 10. 16.

대략 2년 전,

유튜브로 검색해보는 셀프컷

과감하고도 시원하게 머리를 자르는 유튜버들을 보고,

특히 남들의 이목이 전혀 걱정되지 않는 미국 생활 덕분에 좀 더 용기를 가지고 20불 짜리 트리머를 구매해본다


미국에 살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두 가지 있다

1. 머리 스타일에 신경을 덜 쓰게 됌

2. 한국에서는 입지 않던 반바지를 입게 됌


그 중 오늘 적고 싶은 이야기 1. 머리 스타일

어린 적, 아마 중학생 즈음이었으려나.

나는 줄곧 엄마와 함께 미용실에 가곤 했다 기억나는 이름은 지금 생각해보면 촌스러운 미용실 이름들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집 근처 평소 가던 미용실에 엄마와 함께 가게 되었다

나름 멋 부리고 싶었던 시절, 잘 보일 사람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구렛나루가 왜 그리 중요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답답하고 투박한 헬멧을 쓴 것만 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살짝만 다듬으려 다녀오게 된 미용실.

하지만 자신있게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던 그 시절 나는, 그 날도 엄마의 입을 빌려 원하는 스타일을 전달했다

그리고 미용 도중 뭔가 이상함, 깨름칙함을 느꼈던 나. 돌이키기엔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마음 속으로 믿지 않던 종교의 기도말을 외우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랬던 나. 하지만 이런 기도를 들어주실리 없지. 생각지도 않게 구렛나루 근처 흰 두피를 세상에 들키고만 나.

머리 어떠냐는 미용실 선생님 말에, 당연하게도 괜찮다고 말했던 나. 그리고 속에서 차오르는 괜한 화.

미용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괜히 눈에 맺히는 눈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엄마에게 화를 냈던 나.

설상가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그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길에 마주치는 중학교 친구. 눈물을 머금고 괜찮은 척 인사하고, 다시 한 번 눈 앞 까지 흐려질 정도로 밀려오는 눈물에 집에 도착해서는 또 잘못없는 엄마에게 화를 냈던 기억


지금 돌이켜보면 여자친구도 없었고,

원래 공부 열심히 하던 범생이었기에 스타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면서 머리 스타일에는 왜 그리 관대하지 못했는지. 지금보다는 훨씬 많았던 머리숱에 감사나 할 것이지. 왜 그리 깨끗하게 잘린 구렛나루와 뒷머리에 마음 아파했는지 참으로 우스운 중학생 시절의 나.

물론 그 이후로도 항상 크게 튀는 스타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나름 신경은 쓰고 있던 머리 스타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커보니 미국 땅에 있는 나.

유학생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친구들은 과감하게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곤 했고,

미국에는 생각보다 다양한/특이한 사람들이 많았고,

땅 덩어리도 넓어서인지 인구 밀도가 그닥 높지 않아 서로 크게 가까이서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고,

거기에 더불어 나이까지 한 살 두 살 먹어가다보니 점점 나에 대해 관대해진 덕에 도전해 본 셀프 미용.

대충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고, 대충 선을 하나 마음 속으로 긋고, 과감하게 트리머로 밀어본다

조금 어려운 뒷머리는 한 시간 정도면 대충 수정이 가능하다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덕에 뒷머리는 다행히 해결)

머리를 혼자 자르고 가도 어느 누구 하나 내가 자른지 모르는 것에 기뻐하는 것이 맞을지, 평소에도 내 머리 스타일이 그냥 그랬다는 뜻에 슬퍼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혼자 미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30불 가량 트리머를 2년 가량 사용(대충 두 세 달 간격으로 미용실을 방문하는 것은 필요했다)하면서 뽕을 뽑고,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턱턱 숨을 멎곤 하는 트리머를 다시 30불 짜리 트리머로 교체해본다

이제는 조금 더 실력이 늘어서 (아니면 조금 더 시골로 와서 더 과감해져서)

미용 시간도 줄어들고, 머리핀과 빗도 사용해가면서 기술도 부려보는 단계. 가끔은 실패해 내일 출근 못하겠다고 아내에게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하지만 출근을 시키기 위한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정에 성공하곤 한다


미국 살다보니 (그것도 한인타운이 없는 중부 도시)

찾아갈만한 미용실도 없고 (사실 원하는 스타일을 영어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난 뭐 외국인이니까 더 신경안쓰겠지'라는 생각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셀프컷.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도 없고, 땅 덩어리도 워낙 넓고, 다민족이 모여 살고 있는 탓에 특이/다양한 사람도 많아 내 어설픈 셀프컷 쯤은 아무것도 아닌. 그 덕에 아끼고 있는 미용실 값.

어쩌면 어설픈 머리 스타일에 사람들이 힐끔힐끔 비웃는걸 나 혼자만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점점 익숙해져가는 셀프헤어컷을 하면서 느낀 어릴 적과는 달라진 나의 마음가짐에 문득 든 생각을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