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겨울 털사에는 눈이 듬뿍 내렸다
덕분에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이 꽤 있었고, 겨울을 막 좋아하지 않지만 눈 내리는 날의 그 무언가가 집을 감싸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나는 겨울을 즐길 수 있었다
겨울이 별로 좋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 찬 아침공기에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을 때 바지가 접히면서 내 살에 닿는 그 차가운 느낌이 너무 좋지 않다. 내복을 평생 입지 않은 터라 내복을 입으면 된다는 가족들의 조언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출근을 안하면 된다. 눈이 듬뿍 내린 덕분에 찬 아침공기에 바지가 맨살에 닿는 느낌은 피할 수 있었으니 겨울을 즐길 수 있었다
털사에 살면서 느낀점 하나는 눈이 오면 참 깨끗하고 예쁘게 (때로는 거칠게) 내린다는 것이다
젖어서 금방 더러워지는 눈이 아닌, 정말 고운 얼음가루가 땅에 천천히 (때로는 정말 빠르게) 쌓여 조용하게 집 주변을 감싸주는 눈이 내린다
조용히 눈이 내리던 날. 집 문 밖으로 내리던 눈을 구경하던 아기와 강아지는 들떠있었다
완전무장을 하고 집에서 고작 1 m 앞으로 나와 눈을 만끽하던 아기.
하얗게 변한 동네가 신기했는지 한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뽀드득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좋았는지 신나게 걸어다녔다
우리 동네는 참 조용하다 앞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날이 좋은 날엔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시곤 하는데. 이렇게 추운 눈이 오는 날이면 눈이 다 녹을 때 까지 집에서 나오시지 않는다
어쨌든 눈이 와 지붕에 눈이 하얗게 쌓인 우리 동네는 꽤 예뻤다
눈이 평일에만 열심히 내려 준 덕분에 빨리 지나갔던 일주일
눈이 그치고, 주말이 되어, 또 몸이 근질근질했던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털사의 유명한 곳 Gathering place로 향했다
내가 상상했던 눈이 내린 개더링플레이스에는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조잘조잘 웃으면서 눈이 겨울의 막바지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녀온 눈 내린 다음 날의 개더링플레이스에는 '사람은 커녕, 미끄러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경고문들과, 조용히 눈을 쓸고 다니는 찬 바람 뿐'이었다
내 상상력으로 가족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나는 한참을 아내와 이곳 저곳 걸으며 민망한 나의 상상을 뒤로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온 건물에서 이것저것 모아놓은 작은 박물관 같은 곳에서 몸도 녹이고, 민망함도 녹이고. 다행이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누가 모았는지 모를 특이한 것들이 많아 잠깐 아기의 눈을 호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웃고 떠들고, 눈 내린 놀이터의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빠.
그 날 우리 아기는 텅빈 개더링플레이스를 아무 장애물없이, 걱정없이, 엄마 아빠하고만 열심히 걸어다녔다
봄이 되면 재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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