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는 엄마가 골라준 강렬한 원색의 옷, 핑크빛 옷도 종종 입곤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나의 색에 대한 감각은 계속 후퇴했고, 회색 가디건에 진한 회색빛의 면바지를 입고, 거기에 서랍장에서 그냥 집어든 회색의 양말을 신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종종 깨닫고는 한다
그런 나에게도 오랜만에 만났던 한국의 가을이 내는 여러 가지 색들은 두 달이 지난 지금에도 잘 남아있다
3주 내내 좋았던 날씨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닐 기회가 많았는데,
아빠가 리드한 바다여행이며, 특이한 카페며,하늘공원 위 갈색빛 억새밭과 붉게 자란 댑싸리며, 한강 위 주황빛 다리와 한강 너머 건물들 모두 재밌고 예쁜 색들로 가득했다
어릴 때 매년 여름 휴가 때면 강원도 홍천강으로 휴가를 잡고 이것저것 완벽하게 준비한 아빠를 따라가기만 하곤 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꽤나 큰 부담감으로 (강원도가 아닌 새로운 곳으로) 아기를 동반한 가족여행을 계획했던 아빠가 짠 새로운 코스였던 만리포바다. 핸드폰 네비가 아닌 오래 전 업데이트가 멈춘 차 네비를 따라가다 먼길로 돌아가는 아빠에게 다 같이 합세해 툴툴거려보기도 하고, 구석구석 맛집과 카페를 찾아놓은 것에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재롱을 떠는 아기 덕분에 한참을 웃기도 하고. 좋은 색깔에 더해 재밌는 하루도 보냈다
처음 가본 하늘공원 억새축제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다들 작은 기차같은 것을 타고 바람도 맞아보고, 파란 하늘에 갈색 억새밭과 처음 본 붉은 색 댑싸리 밭에서 잔뜩 사진도 찍었다
한강에 근처에 산 적도 없고, 그닥 자주 놀러오지도 않았는데 한강과 한강 너머 빼곡한 건물들이 사람 사는 맛이 나서 너무 보기 좋았다
붉은 댑싸리 밭에서 양손을 쫙 들고 배운지 얼마 안된 "엄마 도와줘!"를 외치며 냄새없을 것 같은 댑싸리에 코도 대어보고, 미로찾기 마냥 돌아다니던 아기도 아마 처음 보았을 여러 가지 색의 공원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의 모든 핸드폰 카메라가 아이를 향했던 날.
한국의 10월은 완벽했다 (물론 회사를 안가고 놀고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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