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조금 더 큰 집을 구하는 것.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동네도 좋고, 첫째를 낳고 잘 키웠던 곳이라 정이 많이 들었지만 방이 두개에 화장실은 하나 뿐이었고, 점점 어쩔 수 없이 늘어가는 짐들에 두 아이를 넉넉하게 키우기에는 좀 많이 좁았다. 거기에 옆집과 벽을 공유하는 타운홈 스타일의 집을 떠나 강아지와 아이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가 맘껏 울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2020년 첫 직장을 이곳에 잡고, 모기지율이 겨우 2퍼센트를 왔다갔다하던 때. 당연히 선견지명이 없고, 물론 돈도 없었던 나는 집을 사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고, 이렇게 3년 넘게 오클라호마에 있게 될 줄은 사실 계획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역사 최저의 모기지율을 무관심 속에 떠나보내고 이제 매달 금리를 올릴까 말까 하고 있는 상황과 회사의 연구소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집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미 접어버렸다. 다행인건 그래도 지난 3년 간 이 동네에서 집을 살만큼의 돈은 모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집값이 매우 저렴하다)
어쨌든 방3개, 화장실2개, 카펫없는 집을 조건으로 찾았고, 미국 생활 처음으로 아파트가 아닌 집주인이 있는 하우스를 빌리려다보니 서투른 점이 많았다
질로우에 원하는 조건으로 알림을 설정해놓았고, 괜찮은 집이 뜰 때면 아내에게 잽싸게 공유하기를 반복. 생각보다 집을 직접 투어할 틈도 없이 바로 계약되어 없어지는 집들이 많아 갑자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항상 "조급한 사람이 진다"는 생각을 생활 전반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나였는데. 막상 살고 있는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도 했고, 챙겨야 할 가족도 있다보니 결국 지고 말았다.
그렇게 집을 보지 않고 사진과, 집을 관리해준다는 매니지먼트사를 믿고 집을 계약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동네의 따듯한 분위기와 놀이터, 그리고 걷기 좋은 호수가 주변의 길들, 깨끗하게 관리된 수영장에 밝아보이는 이웃사람들을 보고 설레임에 떠밀려 선택한 집.
집을 보여주기 힘들다는 전 세입자의 말을 의심했어야 했는데..
전 세입자가 떠나고 미리 집에 드나들 수 있는 액세스를 받은 우리는 설레는 첫방문에 큰 실망을 넘어 큰 우려가 생겼다
"더러울 거에요 아직 청소가 안되어서"라는 매니저의 말에 "괜찮아요"라고 말했던 나.
전 세입자가 4년을 살았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집이 지어진지 몇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집이 더러울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나와 아내 모두 심란했다. "큰일났다 어떡하지"하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
그래도 남은 2주 동안 청소가 잘 되겠지..하는 생각도 해보고, 그런데 이게 청소한다고 될 일인가..하고 또 다시 심란해지고.
그 동안 미국에 살면서 수없이 혼자 욕을 하면서 배운 경험으로. 매니저에게 여러 번 우려를 표하고, 무조건 새 페인트칠, 이것저것 말로 다하기 힘든 것들을 모두 고치고, 프로페셔널 클리닝이 되어야 한다고 따지듯 요청했고, 매니저는 당연히 물론 그러겠다고 대답은 잘했다 (미국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아주 적극적으로 파야 한다)
이사 전 날. 이제는 더 이상 어떤 조취도 불가능한 시간. 이사를 돕기 위해 오신 장모님과 나는 각종 청소도구와 클로락스 몇 통을 들고 집청소를 위해 새로 이사할 집을 들렀다. 그러면서 새로 보게 된 기름떼와 기름냄새와 싱크대 아래에 누수로 생긴 곰팡이와 심각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망가진 식기세척기와 그 안에서 보고 싶지 않았던 바선생님들. 바퀴벌레라면 기겁을 하는 난 분노가 치밀었다. 아틀란타라면 이해할텐데. 오클라호마에서 바선생이라니.. 그동안 누군가 오클라호마 뭐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바퀴벌레가 없어서 좋다고 자신있게 얘기했는데. 새로 이렇게 페인트칠은 다 해줬으면서 청소 좀 제대로 해주지.
어쨌든 분노한 나와 나를 타이르는 장모님은 장갑을 끼고 이곳저곳 맘에 들지 않는 곳들을 클로락스 몇 통을 들여 청소하기 시작했고, 몇시간에 걸쳐 화장실이며, 주방공간이며, 에어벤트, 에어컨디셔너, 창틀 사실상 집 모든 곳에 분명히 굉장히 더러웠을 전 세입자의 흔적을 모두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아주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배워온 세균에 대항하는 법을 모두 적용하여 온 힘을 다했다.
아주 찝찝한 마음으로 첫 렌탈 하우스에 이사하는 날. 그래도 전날 직접 프로페셔널 클리닝을 한 덕에 마음을 많이 수그러들었고 기분좋게 이사를 하나 했지만, 이곳 저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지는 바람에 다시 기분이 다운되었다. 매니저에게 "테러블한 집에 이사왔다 해결해라"라고 여러번 귀찮게 항의한 덕분인지 돌아오는 평일에 바로 메인터넌스 팀이 와서 망가진 창틀, 블라인드, 디쉬워셔, 싱크대 캐비넷, 수도꼭지 등등을 모두 고쳐줬다. 미국에 살다보면서 느낀건데 이런 일을 해결하려면 무조건 따지고 따지고 또 따져야 한다. 아니면 호구잡힌다.
냄새와 벌레에도 민감한 나는 "이것도 인생의 경험이다"라고 도를 닦으며 할 수 있는 조취를 다 취하기 위해, 벌레잡는 약 3종류를 부엌에 빈틈없이 깔았고, 무언가 담배 냄새와 퀘퀘한 냄새가 강한 작은 방들에도 3종류의 다른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첫째날 밤, 모두들 잘 자는 시간에 혼자 뜬 눈을 잠이 오지 않았고. 왜 하필 내가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자책도 많이 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생각에 다시 질로우를 켜 바로 이사 나갈 집이 있는지를 계속 찾다 잠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 이 집에 이사온지 어느덧 3주가 지나가며, 아직도 고칠 것들은 남았지만 이제야 집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등에 흐르는 식은땀으로 키친 주변 바선생 박멸에 힘썼던 것이 효과를 본 것 같고, 어느 정도 스킬이 쌓여 핸디맨이 된 나의 노력에 집에 거의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예민한 코가 이제 덜 화가 나는걸 보면 집의 향도 잘 바뀌어 가고 있다. 깨끗하게 닦인 창문 밖으로 보이는 깨끗하게 깎인 잔디밭 뒷마당도 그래도 그 동안 화났던 마음을 누그러뜨려준다. 그래도 이 집의 장점은 안방이 좀 포근한 느낌을 준다는 것.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이 잘 온다. 어쩌면 그동안 힘들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도 처음 생긴 자기 방에서 책도 잘 읽고, 음식점 사장님 손님 놀이도 잘하고, 숨바꼭질하기에도 좋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잘 놀아 기분이 좋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기대도 해보고, 좌절도 해보고, 드디어 마음이 안정되어 아늑함도 종종 느끼게 되는 첫 하우스 렌트기. 화나고 짜증나는 상황의 반복에도 으쌰으쌰 함께 한 가족 덕분에 최악이 될뻔했던 이번 이사가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는 저녁먹고 가족과 걷는 호숫가 길에 집걱정없이 원래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내 집도 아닌 렌트 집의 구석구석을 고치고, 닦고, 소독하고, 향까지 바꾼 노력. 집주인은 정말 새 세입자를 잘 만났다.
첫 시작은 매우 미비하였으나, 앞으로 우리 가족이 이 집에서 새로운 가족도 건강하게 맞이하고, 언제나 그랬듯 즐거운 일들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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